Asan UBF 2015년 7월 5일 주일메시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말씀 / 요한복음 15:1-27
요절 /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그동안 말씀이 예수님의 누구신지를 설명하고 증언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일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본질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을 믿는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신앙인이 누려야 할 은혜에 대하여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UBF
1. 참 포도나무 예수님(1-17)
1,2절 말씀을 보시시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참 포도나무에 비유하십니다.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 2절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의 본질, 우리 신앙인의 존재의미를 정확히 정의하고 규정하는 말씀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그동안 예수님이 누구신지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십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셨으나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정의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열매맺는 것이라고 오늘 말씀은 단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생활, 예수님을 믿는 인생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은 것은 포도나무에서 포도 열매를 얻고자 함입니다. 농부는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맺되 더 좋은 열매를 더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하여 애쓰고 노력하고 가꿉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포도농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가지치기 입니다. 모세목자님에 물어보니 오이농사도 그렇다고 합니다. 오이농사도 순을 잘라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들을 모두 다 남겨서는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농부는 좋은 열매맺는 가지를 남기고 나머지 가지들은 잘라냅니다. 오이농사에서도 좋은 열매맺을 순을 남기고 나머지 순은 잘라냅니다. 포도나무를 깨끗케 하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양분과 수분을 건강하게 잘 빨아들이는 생생한 가지는 남기고 그렇지 못한 가지를 제거한 것은, 가깝게 볼때는 열두제자 그룹에서 제거된 가룟 유다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과 혈통에 집착하여 복음정신을 잃어버린 유대인과 유대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건강하게 양분과 수분을 공급받는 좋은 가지를 남기고 열매맺지 못하여 제거된 가지는 역사상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열매맺지 못하는 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복음정신을 잃어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십자가 성호를 두 손가락으로 긋는 것이 옳으냐? 세손가락으로 긋는 것이 옳으냐? 논쟁하며 수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양들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런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제일 먼저 숙청된 사람들이 성직자들이었습니다. UBF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리울 만큼 복음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1938년 9월 9일 평양에서 열린 제 27회 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합니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의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또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수행하고 특히 국가 정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하에서 국민으로서의 정성을 다하기로 기함"
1945년 8월15일 평양을 접수한 것은 기독교를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인민 프롤레타리아의 영원한 적으로 규정하는 공산군과 공산정권이었습니다. 평양은 지금까지도 김일성 3대 세습 우상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의 존재의 이유는 열매를 맺는데 있습니다. 초기 영지주의자들은 깨달음을 강조하였는데, 영지주의 이단의 특징은 열매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교리를 따를 때, 내면의 열매, 인격의 열매, 구원의 열매, 삶의 열매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좋은 열매 풍성한 열매를 주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예수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려면 깨끗해진 가지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붙을 수 없는 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 붙을 수 있는 가지가 된 것은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깨끗한 가지가 되게 합니다. 우리 인생이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서 예수님으로부터 양분과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가지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여 가능합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영접할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영접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깨끗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UBF
4,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믿는 생활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예수님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나무로 따지면 예수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안에 있을 때, 예수님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열매라고 했는데,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이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됩니다. 예수님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7절 전반절 말씀을 볼 때,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씀 앞에 겸허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영접하고 믿을 때,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믿었으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따라야 합니다. 말씀을 지키고 말씀을 행하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행하고 지킬때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 온전히 거하고 계시다고 할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적으로 준수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느냐 없느냐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안에 거하여야 하고 예수님의 사랑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실존이어야 합니다. 말씀 순종과 계명 실천이 예수님께서 우리안에 살아 계시는 실증인 것입니다. 인생의 많은 열매란 이런 삶에 따르는 결과인 것입니다. UBF
6절을 보십시오. 6절 말씀은 우리가 왜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하는지, 왜 예수님 안에 거하여야 하는지 이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데요? 열매 그거 좀 맺지 않으면 어떤데요? 반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목재로도 쓸 수 없고, 심지어 밥을하고 소죽을 끓이는데 불쏘시개로도 쓸 수 없습니다. 그저 바닥에 버려져 말라지다가 때가 되면 그런 가지들을 긁어 모아 밭에서 불태우고 맙니다.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함부로 영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단 한 번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을 되감기 할 수 없으며 후회한다고 실수였다고 다시 물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 번 뿐인 우리의 삶에 대하여 진지한 자세로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꼭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꼭 붙어 있을 때 많은 열매가 맺힌다고 하였는데, 그 열매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막연히 많은 열매라고만 하지 말고 좀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열매가 맺힙니까?
7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6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기도응답의 열매가 맺힙니다. 사람들은 흔히 교회가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어른들은 교회 나가면 술 담배를 하지 않게 될 테이니 젊은 자녀들에게 교회나가면 좋을 것이라고 권합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을 이성적 분석과 판단의 범위에서 가치를 매기려 합니다. 예수님 믿을 때, 예수 안에 거할 때 이루어지는 분명한 열매는 하늘 아버지의 직접적인 개입과 역사하심입니다. 이것은 합리적인 논리 범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타당성이나 현실적 인과관계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하늘의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큰 일을 행하시되 그의 기도에 응답을 주십니다. 믿는 자들의 기도는 분명하게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약속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에 뒤따르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요즘 ‘일용할 양식’에서 창세기 요셉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노예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꿈을 품고 감사하였을 때,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함이 따랐습니다. 보디발 여사의 유혹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하였을 때, 파라오의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자기 문제에 빠져 슬퍼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다른 죄수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의 문제 뿐 아니라, 파라오의 고민까지 해결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 믿음 후 응답’입니다. ‘선 순종 후 체험’ 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UBF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의 삶에서 맺는 실제적인 열매는 기도의 응답, 하나님의 능력 뿐 아니라 우리 존재 안에서도 맺힙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기독교 신앙의 겉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은 ‘희락'입니다. ‘기쁨'입니다. 요한복음이 1장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증거하고 난 후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기적을 행하신 첫 번째 장소가 가나 혼인잔치였으며, 그 잔치에서 행하신 일도 기쁨의 포도주가 떨어 졌을 때, 최상급 포도주를 주셨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주시는 것은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 존재를 빛나고 행복하게 합니다. 기쁨이 있을 때, 우리는 나이의 많고 적음, 돈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럽습니다. 돈 많은 집에 행복이 없는 것은 많은 돈을 관리하는데 따르는 근심이 많다 보니 기쁨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그 계명을 지킬 때 우리에게 임하는 가장 뚜렷한 기적이 ‘기쁨'입니다. 끊임 없는 기쁨, 더할 수 없는 기쁨, 하늘나라를 맛보는 기쁨입니다.
12-14절을 보십시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7절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 안에 거할 때 맺는 열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여기서 친구는 나와 유전적 친연성이 전혀 없는 존재를 말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가족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 맺는 위대한 열매는 자기가 아니라 자기 가족이 아니라 아무런 친연성이 없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세상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것이 이런 비범한 사랑입니다. 이런 비범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은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의 사랑안에 거하며 예수님께 감화받은 사람들만이 행할 수 있는 실제적인 열매 입니다. UBF
이상에서 정리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열매는 열매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맺는 아름다운 열매는 이 땅에서 드러나는 실증적이고 실제적인 변화인데,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8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터이요" 우리 믿는 자들이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늘 근심하던 사람에게 기쁨이 임하고, 두려워하고 오그라져 있던 사람들이 헌신적인 사랑의 사도가 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두려워하고 소시민적이던 사람들이 기도하고 도전하여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질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8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열매맺는 신자들은 명실공히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받습니다. 열매를 통하여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열매맺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친구'로 인정하십니다. 15절에는 친구가 누리는 차별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은 지시하는 것만 할 뿐 그것을 왜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종은 협의의 대상이 아니라 지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친구에게는 앞의 사정과 뒤의 기대에 대하여 다 이야기해줍니다. 의견을 묻기도 하고 자문을 구하기도 합니다. 친구의 상의하는 파트너요 신뢰하는 동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열매맺는 사람들을 친구로 삼아 주십니다. 실로 큰 영광이며 넘치는 기쁨의 일입니다. UBF
2. 세상의 미움(18-27)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열매를 맺으며 사는데, 이때 한 가지 인정하고 감당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핍박하는 자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소속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은 곧 사단에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영생에 속하였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그 미움으로 예수님께 속한 자를 미워합니다. 세상의 미움을 받을 때 우리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말씀대로 살고 사랑하며 사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사랑의 사도가 되었는데 왜 나를 미워하나? 그것은 세상과 하나님, 심판과 영생, 저주와 축복으로 서로 소속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미움 받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미워한 자들이 그 제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핍박과 미움을 당할 때에 주님께서 당하신 핍박을 함께 당하는 것임을 알고 이를 감당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UBF
21-25절을 보십시오. 핍박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몰라서 예수님을 핍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지해서 그랬다고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기 싫어하고 자기유익을 구하고자 하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예수님을 싫어하고 예수 믿는 자들도 함께 핍박한 것입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핍박당할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 때 보혜사 성령께서 고난당하고 핍박당하는 자들을 도우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낸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보혜사 성령께서는 고난과 핍박 중에서 오히려 예수님을 증거 하실 것입니다. 또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증거하는 담대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열매 맺습니다. 인생은 열매가 중요합니다.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은 지혜롭습니다.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꼭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께 꼭 붙어 있는 가지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예수님께 꼭 붙어서 사랑의 열매, 풍성한 최고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기도합니다.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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